허투루 살지 않아야지

예전에 engineer66이라는 아이디로 82cook에 활동하신 분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은 그 커뮤니티 활동을 접은 지도 오래 되었고, 심지어 활동을 접으면서 게시글을 전부 지우셨는데도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분이다. 물어물어 그분이 이루후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즐겨찾기 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 보는데 정말 매번 감탄하게 된다.

아마 제주에 사시는 듯 한데, 철마다 나는 제철 음식으로 집밥을 올리신다. 이 분 살림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이 분 집에서는 콩 한 알,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 댁 자녀분이 학교에서 받아온 갱지 인쇄물을 베란다에 며칠 두고 말려서 그걸 모아다가 감자나 양파 등의 저장해두는 야채를 보관할 때 겉을 싸 두거나, 옹기에 넣을 때 한 겹 깔아준다. 라면봉지도 꼭 모아두었다가 그걸 잘라서 돌려서 잠그는 병을 쓸 때 사이에 꼭 끼워둔다. 그렇게 두면 밀폐용기처럼 밀폐가 잘 된다고. 돼지 앞다리살을 볶던 무쇠솥에 그대로 다른 반찬을 볶아 미리 나온 기름 한 방울 허투루 쓰지 않더라. 아무튼 이런 세세한 것 하나 하나 얼마나 손끝이 야무진 분인지 얼마나 알뜰한 살림인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취를 꽤 오래 했는데도 나는 자주 재료를 썩혀 버린다. 해둔 반찬도 종종 상해서 버리곤 한다. 아직 학생이어서 생활이 불안정한 것도 한 몫했겠지만 어쨌든 썩 유쾌하지는 않은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요즘 비닐봉지 쓰기 않기, 에어컨 안 켜기, 걸어 댕기기, 불필요한 전기 안쓰기 등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냉장고 쪽 사정은 언제나 마음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 마트가 멀어서 어쩌다 장을 보면 한 짐을 사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 번 요리할 때 잔뜩 하게 되고, 먹는 입은 하나니 금방 먹지 못해서 결국 버리게 될 때가 꽤 있다. 욕심껏 샀다가 다 먹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이랄까.

사는 것도 냉장고 관리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욕심껏 꾹꾹 채워둔다고 능사가 아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을 맡아야 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채워둔 먹을 거엔 책임을 져 줘야 한다;; 
이제는 정말 사람 관계로 힘들어 하지 않기로 했는데, 날이 더우니 며칠 동안 잡념이 일어서 고생했다. 게다가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도 삐걱이게 되고. 말 한 마디 허투루 하지 않고, 몸도 깨끗이 방도 깨끗이 냉장고도 깨끗이 그리고 마음도 깨끗이. 그렇게 정갈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강된장을 끓여서 호박잎을 쪄 먹을 생각이다. 동네 지하철역에는 쭈구리고 부식을 파는 분들이 많은데 너무 먹고 싶던 호박잎을 파시는 할머니가 있어서 복권 당첨된 기분이었다. 순한 음식 먹고 순하게 살아야지.

1 2 3 4 5 6 7 8 9 10 다음